청정 해역 / 이덕규
여자하고 남자하고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 있다네
하루 종일 아무 짓도 안 하고
물미역 같은
서로의 마음 안쪽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다네
너무 맑아서
바닷속 깊이를 모르는
이곳 연인들은 저렇게
가까이 있는 손을 잡는 데만
평생이 걸린다네
아니네, 함께 앉아
저렇게 수평선만 바라보아도
그 먼바다에서는
멸치떼 같은 아이들이 태어나
떼지어 떼지어 몰려다닌다네
*출처: 이덕규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문학동네, 2022.
*약력: 1961년 경기도 화성 출생,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남녀가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미끈미끈한 물미역 같은 서로의 마음만 쓰다듬을 뿐,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건 청정 해역이기 때문일까.
빠른 사랑은 속물들이나 하는 짓이라면 자칫 지탄의 대상이 될까.
함께 앉아 수평선만 바라보아도 멸치 떼 같은 아이들이 태어나 떼 지어 몰려다니고
손을 잡는 데만 평생이 걸린다니 이 얼마나 청정 해역의 사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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