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눈주름 악보 / 공광규

믈헐다 2023. 4. 24. 06:07

주름 악보 / 공광규

 

이른 봄날 오후

벚나무 꽃그늘 돗자리 위에서

모로 누워 자는 아내의 눈주름을 본다

 

햇볕도 그늘을 만들고

꽃나무도 그늘을 거느리는 걸 보면

아내에게도 그늘이 많았을 것이다

 

꽃나무 가지에 앉았던 바람이 깃을 치자

눈주름 위에 음표로 내려앉는

꽃잎 몇 장

 

저녁이 와서

노을 한 폭 개어다 덮어주는데

낡은 몸에서 오래된 풍금 소리가 터져나온다

 

*출처: 공광규 시집 담장을 허물다, 창비, 2013.

*약력: 1960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충남 청양군에서 성장, 동국대 국문과·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아내의 눈가에 잡히는 주름에다가 악보를 그리는 화자의 마음은 어떨까.

그동안 함께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높은음자리와 낮은음자리를 그릴 때마다

떨리는 손이 눈가를 촉촉이 젖게 하였을 것이다.

저녁노을의 이불을 덮은 아내의 풍금 소리는 또 어땠을까.

남편의 바람에 따라 부드럽다가도 때론 격렬하기도 했을 것이지만,

비록 낡은 몸의 아내이지만 여전히 감미로운 선율이 흘러나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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